수몰도시
W. 타원
그렇습니다. 세상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.
어쩌면 심해인이 바다의 지옥문을 열어서, 어쩌면 위대한 무언가가 강림해서, 어쩌면 마법서를 모은 마법사가 주문을 외워서... 이유는 무궁무진하겠지만 이제 와서 그 이유가 중요할까요? 어느 날 바다는 검어졌고 인류가 그 징조를 눈치채기도 전에 거대한 해일이 되어 몰아쳤습니다. 네. 세상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.
물론 인류의 절멸은 아니었습니다. 재앙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이 있고 KPC와 탐사자도 그 중 하나기 때문에요. 데이트했거나, 귀갓길에 함께 있었거나, 혹은 함께 잠들어 있었거나. 두 사람의 세상이 갑자기 뒤집히고, 눈을 뜨면 세상의 종말 그 중심입니다. 기울어진 높은 빌딩, 쓸려나간 산,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주택가, 모든 것들이 검은 바다 아래에 잠겨있었습니다.
살 방도를 찾아봐야겠죠. 두사람은 무너진 빌딩을 다리삼아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검은 바다를 헤엄치기도 하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합니다. 우여곡절 끝에 구한 라디오에서는 때때로 생존자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라디오가 소리를 내는 일도 한 달, 두 달이 지날수록 사라져 갑니다.
...그리고 곧, 검은 물에 잠겨 죽은 사람들이 괴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. 괴물은 잃어버린 육신과 비어버린 영혼을 채우려는듯 산 자를 찾아 공격하고, 잡아먹고, 물어뜯긴 사람은 그와 같은 괴물로 변모합니다.
그렇게 다시 몇 달. 죽은 것들과 사투하며 생존해나가던 두 사람에게도 희망이 생깁니다. 바로, 먼 곳에 보이는 빌딩에서 이따금 얕은 빛이 나왔기 때문입니다. 누군가 살아있다. 몇 달 내내 침묵하던 라디오에서도 목소리가 들립니다.
" ...도시의 .... 45층, 빛을 ...있는.... 빌딩, 생존자가 ....
우리는 백신을 ... 습니다. 이 방송이 들리는 생존자는 ..... 희망을 잃지 말고 .... "
검은 바다의 깊은 어둠 속에서 희망이 되어 빛나는 빌딩.
두 사람은 그곳을 등대라고 부르며 향해 갑니다.